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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봉N이 만난 사람 

 

자활로 터전 일군 J&C 인테리어 장영복∙최명수 대표 

지역에 보탬되는 사회적 기업을 꿈꾸다

  

많은 사람들에게 실직의 고통을 안겨준 97년 IMF에 이어 10년 남짓 만에 또다시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엄습했다. 막 직장을 얻으려는 사회 초년병들은 첫 직장을 찾기가 쉽지 않았고 모처럼 기회를 잡았던 사람들도 자리를 지키기가 만만치 않았다.

또 상당수 사람들이 구조조정으로 몸 담았던 직장을 등져야 했다. 물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소규모 자영업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게문을 닫지만 않으면 그나마 형편이 나은 축에 속했다. 삶속에 절망이 조금씩 스며드는 순간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번쯤 절망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그 절망에 맞서 당당히 이겨낸 사람은 얼마나 될까. 단언컨데 절망을 맛본 사람보다 극복한 사람의 숫자는 훨씬 적을 것이다. 그중 일부는 지금도 삶속에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헤매고 있을테니 말이다.

방학동 초당초등학교에서 우이동길로 넘어가는 언덕배기에 위치한 ‘J&C 인테리어.’ 이곳을 지키고 있는 장영복 대표와 최명수 대표도 인생에서 ‘절망’, ‘고통’이라면 남부럽지 않게 경험을 한 경력자들이다.

절망에서 헤메이다

“한때는 ‘쌍문동의 까만 봉다리’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유명했죠. 까만 봉지에 소주를 사들고 다니면서 겁없이 먹던 모습 때문에 주변에서 그런 별명을 붙여준 것 같아요.” 최대표의 말이다. 한참 술을 먹을 땐 하루에 소주 열병씩을 마셨다고 하니 기가 찰 일이다.

최대표도 한때는 서비스업종에서 잘나가는 직장에 근무했었다. 그러다 닥친 것이 IMF였다. 퇴직금을 좀 받고 직장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기댄 것이 술의 힘이었고 알콜 중독자까지 됐다.

장대표도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총각 때 처음으로 종로 세운상가에서 장사를 시작했죠. 그리고 군대를 다녀와선 어린이책 등을 판매하는 영업사원도 했고 이후엔 건설사 배관공으로 쿠웨이트, 이라크, 사우디 등 중동에서 80년대 초반을 보냈습니다.”

귀국해선 중동에서 번 돈으로 형님과 함께 만화 사업을 시작했다. 장대표가 시나리오를 쓰면 만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유통해 돈을 버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장대표가 터를 잡았던 수유동 인근에 만화가들의 작업공간이 많았다고 한다. 그 후 부동산개발회사, 자동차 부품가게, 다시 만화 사업으로 장대표의 인생은 이어졌다. 그런데 만화로 인생을 일궈보려는 순간 함께하던 만화가가 등산을 하던 도중에 숨을 거뒀다. ‘20세 재벌’, ‘신의 아들’ 등으로 잘 알려진 만화가 박봉성씨가 바로 그였다.

자활 통해 희망 일궈

“돈도 좀 벌었고 6∼7년 정도 애착을 갖고 했던 일이라 충격이 컸죠. 그러다 결국 만화 사업을 접을 수 밖에 없었고 신용불량자까지 돼버렸습니다.”

그러나 장대표나 최대표의 방황은 길지 않았다.

만화를 그만둔 뒤 술과 담배로 시간을 보냈던 장대표는 교회를 다닌후 1년 만에 술, 담배를 끊었다.

사흘에 소주 한 박스 씩을 마셔댔던 ‘쌍문동 까만 봉다리’ 최대표도 주변 사람의 소개로 ‘알콜 극복 프로그램’에 참여, 정신치료와 약물 치료를 받았다. “전에는 찌개만 봐도 술을 먹고 싶었죠. 그런데 술을 먹고 싶을 때와 술을 먹고 제일 나빴던 기억을 일치시키다보니 신기하게 술맛이 사라지더라 이겁니다.” 술을 끊었던 당시의 이야기를 꺼내던 최대표의 눈에 살짝 눈물이 비쳤다.

장대표와 최대표의 제2의 인생은 여기서 다시 시작됐다.

동사무소의 소개로 자활프로그램에서 두 사람이 만난 것이다. 나이는 장대표가 다섯살 가량 많지만 자활에서의 경력은 최대표가 4년 가량 선배다. 공공근로, 사무보조, 방역, 청소, 밑반찬만들기 등을 두루 섭렵했다. 전에 같았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일들을 또다시 맞이한 인생에서 새롭게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차린 것이 지금의 인테리어 가게이다.

“자활이라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창업을 하기 위한 발판이기 때문에 당초에는 모두 8명이 참여를 했었죠. 그러나 지금은 우리 둘이서만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조그마한 사업을 시작했으니 나중에는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던 사람들도 아우르고 지역 사회에도 보탬이 되는 사회적 기업으로 이곳을 키워나가는 것이 꿈입니다.” 장대표가 밝힌 포부이다. 그래서 지금은 바쁜 일과에도 불구하고 도봉지역재단에 같이 참여해 지역사회에도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제 2의 인생, 동네 사람들과 꿈꾸다

 

최대표는 “않되겠다는 생각은 한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늦게 인테리어를 시작한 만큼 더 많이 뛰어다녀야 하는 것을 알고 있어 일이 없어도 관내를 계속 돌아다니는 것이 중요한 일과중 하나죠.” 그러다보니 어린이집이며 독거노인을 위한 무료 집수리 등 궂은 일도 곧잘 생긴단다.

출발의 의미를 잘 아는 그들이기에 첫 걸음을 떼는 ‘마을신문 도봉N’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우리가 가게를 열고 나서 주변을 푸르게 만들기 위해 길가에 나무를 손수 심었던 것처럼 마을신문도 척박한 땅에서 나무가 자라듯 푸른 희망이 가득한 세상을 만드는데 힘을 보탰으면 합니다.”

1시간 가량의 인터뷰 시간이 훌쩍 지났다.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장대표와 최대표는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급히 자리를 떴다. 무수골에 사는 한 주민의 집을 새롭게 탈바꿈시키기 위한 마술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그들의 뒷모습이 당당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시민기자 김승호 goodlett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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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을신문 도봉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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