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진 시인(이하 시인)과 인터뷰 약속을 해놓고 며칠 동안 그의 홈페이지를 둘러보았다. 아직 초보 시민기자라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를 않았다. 그냥 그동안 나왔던 시인의 시를 읽어보는 수 밖에.
▲ 선한 미소를 가진 이생진 시인
6월2일, 도봉구청에서 열리는 '화요음악회'에서 시민기자 5명이 시인을 만났다. 인사를 드리자 시인께서 먼저 자신의 디카를 꺼내며 사진을 찍자고 하신다. 팔순의 시인이 꺼내는 디카라. 왠지 인터뷰 전에 가졌던 부담감이 덜어지는 느낌이었다. 음악회를 끝까지 보고 가깝고 조용한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시인은 “여기 비싼덴데...” 걱정을 했다. “저희가 조금 무리 했습니다.” 결국 그 식당에서 가장 싼 음식으로 시켰다.
여기가 좋아. 시가 죽지 않아
시인은 방학동에서 16년여를 살았다. 산이 좋아서 산에 반해서 이사를 왔다고 했다. “여기가 좋아, 시가 죽지를 않아”라며 은근히 동네에 대한 자부심을 내 비쳤다. 그렇지만 시인은 성산포시인으로 더 유명하다. <그리운바다 성산포>라는 시집으로 제주도 명예도민증도 받았다. 산을 배경으로 있는 도봉에 살면서 왜 바다를 더 좋아하실까 살짝 질투심 묻어난 질문을 했다.
“시에 바다와 섬을 주제로 한 것이 많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느 작가의 글에 ‘산 너머에 꿈이 있다 길래 찾으러 갔다가 못찾고 눈물이 글썽글썽해서 되돌아왔다’는 내용이 있어요. 그걸 읽고 혹시나 나는 꿈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동네(충남 서산)에 있는 나지막한 동산들 너머로 가보았어요. 몇 개의 동산을 넘어 갔더니 바다가 나왔어요. 그때부터 바다에서 많은 것을 했지요. 어렸을 때의 마음이, 그 심정이 아직도 남아있어요. 바다를 좋아했어요”
시인에게는 초등학교 3학년때가 인생이 결정되는 한 순간이었던 것 같다.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자신의 일기를 읽어 주시면서 일기쓰기를 권하셔서 그때부터 일기를 썼고 글이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 "언어가 자기 존재를 만든다"며 "독서보다 글쓰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생진 시인
시인의 이야기는 시간을 뛰어넘는다. 자신의 예술이 있다는 건 인생 말년의 행복이라고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예술 중에서도 시는 침대에 누워서도 가까이 할 수 있는 것. 연필하고 종이만 있으면 되니까.
서귀포 주민자치센터에서 시낭송회를
시인은 얼마 전에 제주도 서귀포시의 한 주민자치센터에서 주최한 시낭송회에 다녀왔다. 동행했던 시민기자 중 한명이 마침 그곳을 여행하고 있었던 터라 시낭송도 보고 시인께 인사도 드렸다고 했다. 시인께서 고향사람 왔다고 너무나 반가워하시며 서울로 돌아오셔서 시집도 한권 보내주었단다. 우리 동네에서도 시낭송회를 한번 하자고 했더니 ‘여기서는 안 해. 부끄러워...아는 사람이 많아서. 이상해 먼 데 가서는 잘하는데...’ 하며 말끝을 흐리신다.
부끄럼 타는 시인. 시인은 시낭송은 꼭 대중을 대상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즐거운 곳에 가서는 혼자서도 시낭송을 한다고 한다. 그러면 아주 흐뭇하시단다.
부끄럼을 타는 시인이지만 시낭송할 때 퍼포먼스를 한다. 언제부터 퍼포먼스 시낭송을 하였는지 이유가 무엇인지 여쭤보았다.
“퍼포먼스 한지는 몇 년 되요. 요즘은 영상 시대이니 평면적인 것 만으로는 안되고요. 시대를 알려면 시대로 들어가야 해요.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는 시낭송의 형태로 퍼포먼스를 하게 되었고, 반응도 괜찮아요”
시인은 변화해야 한다고 했다. 시대를 읽고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고. 그래서 요즘도 자주 서점에 나가 새로 나온 시집을 모두 읽고 맘에 드는 것이 있으면 사가지고 온다고 했다.
누구보다도 젊은 시인. 시인은 현장에서 시 쓰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제주도, 독도, 실미도, 박연폭포 등등 여러 곳에 직접 가서 시를 썼다.
▲ "시는 불온한 것, 기존의 모든 것에 반역하는 것, 자유로운 것" 이생진 시인 © 겨리아빠
시인은 “정치가 사람들을 울린다”고 했다. 최근에 쓴 ‘정치와 눈물’이라는 시에서 ‘정치가 없는 데로 가고 싶다./ 그것만 없어도/ 내 눈물은/ 반 이상 줄거다.’ 라고 썼다.
시인은 “시는 불온한 것이다, 기존의 모든 것에 반역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시의 내용에 대해 책임질 일 없으니 시인은 자유롭다. 자유롭고 싶어서 시를 쓴다”고 했다.
소통, 도봉을 넘어 제주까지
마지막으로 지역에서 시인의 역할에 대해 질문했다.
“도봉만 소통하는 것만이 아니라 노원구 사람들과 소통하고 제주도 사람과 소통하고 그러한 소통을 시를 통하여 이룰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 역시 생각이 크다’
시인의 생생한 음성으로 많은 사람들이 얘기를 들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면을 통하여 전하는 것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느낌. 사실 인터뷰 내내 살짝 흥분상태였고 인터뷰가 끝나고서는 좀 더 들뜬 상태가 되었다. 시인처럼 나이 들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차로 모셔다 드리는 길에 시인은 신문이 나오면 같이 막걸리 마시자고 하였다. 이렇게 신문에 났으니 더더욱 약속을 지키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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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진 시인(1929~)
서산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외딴 섬을 좋아했다. 우리나라 섬의 정경과 섬사람들의 뿌리깊은 애환을 시에 담아 많은 독자들게게 감명을 주었고, 섬에서 돌아오면 인사동에서 섬을 중심으로 한 시낭송과 담론을 펴고 있다.
1991년에는 900년 된 방학동 은행나무를 지키기 환경운동가, 우이동에 살고 있는 시인들과 함께 촛불시위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시집으로 <그리운 바다 성산포>,<독도로 가는 길>,<서울 북한산>,<김삿갓, 시인아 바람아><서귀포 칠십리 길>등이 있다.
홈페이지 http://www.islandpoet.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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